전라북도 3.1운동 유적지 - 오수 3.10 만세운동
나이 불문하고 남녀노소 다 대한독립만세전북의 발견 구독자 여러분! 혹시 102주년 3.1절 기념행사를 보셨습니까? 저는 독립운동가분들의 후손들이 자신의 언어로 독립선언서를 읽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들이 읽은 것은 바로 독립선언문입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대한독립을 원하던 사람들이 동시에 듣고 외친 염원입니다. 그 후 지방으로 퍼져나가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번지게 됩니다. 서울에서 시작된 3.1 운동은 잘 알려져 있지만 지방에서 일어난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지방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선조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3.1운동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비폭력적 만세운동으로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3.1만세운동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유적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시작은 임실군 오수초등학교 운동장입니다.설산 이광수 선생 의거 기념비요즘 학교 운동장에는 인조잔디가 준비되어 있는 걸 많이 볼 수 있어요. 축구공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드리블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데요. 두 팔을 벌리고 달리고 싶은 이곳에 누군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요. 이 기념비는 구정물로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학생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에 참가한 설산 이광수의 업적을 기르는 기념비입니다.기념비에 적힌 설산 이광수 선생의 업적을 읽다 보면 두 손은 공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오수보통학교 교사였던 이광수는 서울에서 천도교 주자인 손병희를 만나 3.1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들었습니다. 이광수는 젊은 지도자들과 뜻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하고 독립선언문을 오수로 몰래 가져왔습니다. 이후 천도교 조직망을 활용해 다른 지방에도 독립선언문을 전파하고 거사를 준비했습니다.
3월 10일 오전 10시 1교시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설산 이광수 선생님은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생만한 아이들을 집합시켜 일제히 오수 시내와 오수역 등 일대에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독립운동에 나선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볼 수 없는 광경을 이광수 선생이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대한독립을 원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오수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인근 남원에까지 퍼져나갔다. 이에 일본 경찰이 만세운동의 배후를 찾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광수는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평생 독립운동에 공헌하였습니다.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비폭력운동을 전개해 전 세계에 아이들의 목소리를 높인 업적을 인정받아 후대에 선생님의 업적을 키울 수 있도록 기념비가 세워졌다고 합니다.실제로 우리에게 독립운동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일본의 무단통치가 무서워서 피했을 겁니다. 하지만 뛰어놀 시간에 바람개비 대신 태극기를 펄럭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초등학생들을 상상하니 왠지 저도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설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3.1운동이 전국 각지로 확산된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알렸기 때문입니다.충의의 고장임을 증명하는 3·1 독립운동 기념탑오수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오수중학교 옆 야산에는 임실군 3.1운동의 발원지인 오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3.1 독립운동 기념탑이 세워졌습니다. 만세운동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과 독립을 위해 운동에 참여한 일반 백성들, 그리고 오수보통학교 학생들을 키우기 위해 붙여졌다고 합니다.보통 학생들을 보고 자극을 받은 오수의 백성일까요? 조용하던 오수와 임실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집니다. 미리 만세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 임실군수와 경찰서장은 지방 사람들을 위협해 해산하기를 원했지만 몇몇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오수장날 열린 만세운동에는 인근 순창, 남원, 장수 백성이 함께 모였으며, 참가자 수는 1,000명으로 추정됩니다"
그 후에도 임실, 청웅면, 지좌면, 강진면, 신덕면, 성수면, 운암면 등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무장 진압으로 인해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결국 자진 해산했습니다. 끝난 뒤에도 만세운동에 참여한 인물들을 조사(調辭)로 옥에 가두어 두는 등 일제는 독립을 염원하던 일을 그만두게 했습니다.최성미 저자의 임실 독립운동사에 따르면 당시 임실 지역은 전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항일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전라북도에서 독립운동인 훈포장 수여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오수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오수 의견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이렇게 상상해 보니 충성심만은 어떤 땅에서도 임실을 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여러분들에게 3.1운동은 어떤 날입니까? 무단통치로 탄압하고 차별하는 세상을 묵묵히 참았던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용감한 날입니다. 3.1운동에서 위인이 탄생했지만 이제 위인과 함께 전국 운동에 널리 퍼지게 된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들이 있기에 3.1절이라는 기념일을 갖게 된 것입니다.전북도 내에서 항일운동이 활발했던 임실. 임실에는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많은 유적과 기념비가 남아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곳 이외에도 임실에는 항일유적 및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곳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올해 광복절 같은 기념일에 방문하기를 권장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기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대한독립만세글, 사진 = 최영호